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갈리아 전쟁 (문단 편집) === 네르비족과의 싸움 === 승리의 여세를 몰아 주변 부족의 영토를 침공한 카이사르는 근방에 있는 '''수에시오네스족'''의 항복을 받은 뒤 벨가이인의 맹주인 벨로바키족의 영토로 진입했다. 전황이 안 좋게 되자 벨로바키족의 내부에서 전쟁을 주동했던 정치가들은 브리타니아 섬으로 망명했고, 벨로바키족은 카이사르에게 항복했다. 벨가이인들의 맹주였던 벨로바키족이 항복했지만 이것에 강력하게 반발한 '''네르비족'''은 그들의 부족만으로 로마군에게 항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품었다. 이들은 과거의 [[스파르타]]처럼 포도주 및 사치품을 모두 수입 금지한 채 성인 남자들은 금욕적인 생활을 유지하며 오로지 군사 훈련으로만 세월을 보내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이렇게 단련한 군대를 바탕으로 10개 부족을 지배하에 두고 있었다.[* 이는 《갈리아 전기》 5권 38에 이들이 재등장할 때 언급된다.] 카이사르는 네르비족을 격파함으로써 로마의 패권에 불만을 품은 세력을 일소할 생각으로 군단을 이끌고 네르비족의 영토를 향해 진군했다. 네르비족은 첩보와 지형 면의 상대적인 우위를 활용하여 행군 중인 카이사르의 군대를 급습할 작전을 세웠다. 이들이 매복하기로 한 장소는 언덕 밑의 약간 트인 평지 끝자락에 위치한 숲 속이었다. 로마군이 이 평지에 진입하여 모습을 드러내자 네르비족은 숲에서 뛰쳐나와 로마군을 향해 돌진했다. 이를 '''[[사비스 전투]]'''라고 부른다. 이 싸움에서 네르비족을 격파한 카이사르는 그들의 항복을 받아내고, 네르비족을 지원했던 '''아투아투키족'''을 공격하기 위해 행군했다. 그들은 본디 농성하기로 했으나 로마군이 거대한 공성병기를 만들어 움직이자 겁에 질려 로마군에게 항복했고, 카이사르는 이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날 밤 아투아투키족은 인근에서 야영 중인 로마군을 야습했다. 하지만 로마군의 반격으로 4,000명의 희생자를 낸 끝에 성내로 퇴각했다. 아투아투키족은 다음날 아침 성을 함락한 로마군에 의해 주민 53,000명이 노예로 팔려버렸다. 이는 신의를 저버린 자들에 대한 징벌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다.('''[[아투아투키 공방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